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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hapkiyusul
Subject   [국제신문] 염창현 기자 - 고수를 찾아서
원문발췌 - 국제신문

고수를 찾아서 <24>김윤상 대한민국 덕암류 합기유술 총본부 도주
"죽을 때가 돼야 비로소 끝나는 것이 무술"
해방 뒤 우리나라 합기도 개척한 최용술 도주 수제자
고희 넘긴 나이에도 도복 벗지 않고 영원한 현역 고집
"싸우지 않고 상대방 이기는 방법 알아야 진짜 무도인"



최용술(1899~1986)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아홉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절에서 살다 근대 일본 유술의 최고수라 일컬어지는 다케다 소가쿠라는 무인을 만난다. 그리고 그에게서 대동류 합기유술을 배운다. 다케다는 최용술에게 "합기유술은 원래 신라시대 때 화랑인 삼랑 원의광이 도일하면서 일본에 전해진 것이다. 그런 만큼 너는 너희 나라로 가서 이 술기를 전파시켜라"는 부탁을 한다. 해방 이후 귀국한 최용술은 대한합기유권술 도장을 열고 본격적인 후학 양성에 나선다. 그의 무술은 놀라운 것이었다. 어떤 상대도 대적할 수 없었다. 아무리 덩치가 크고 힘이 좋은 이라도 최용술의 손에 한 번 걸리면 절대 빠져나오지 못했다.


쓰러진 상대방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 시범을 선보이는 김윤상 대한민국 덕암류 합기유술 총본부 도주. 그는 일흔을 넘긴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몸놀림이 빨랐다. 서순룡 기자 seosy@kookje.co.kr·

최용술은 사실상 우리나라 합기도의 창시자다. 하지만 그의 명성은 실력에 비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스스로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은 데다 그에게서 술기를 배운 제자들도 철저하게 외면했다. 넘기 어려운 거대한 산이었던 최용술. 그가 있는 한 제자들은 감히 자신이 최고라는 말을 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한동안 잊혀졌던 최용술은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부활하기 시작한다. 한국과 일본의 무술사학자들에 의해서다. 그리고 최용술의 술기가 아직도 전해지고 있음을 확인한다. 대한민국 덕암류 합기유술 총본부인 용술관. 그곳에서는 김윤상(74) 3대 도주가 고희를 넘긴 나이임에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합기유술의 원형을 지킨다

용술관을 찾아간 충남 금산군. 읍사무소 근처라고 했지만 크고 작은 간판에 가려 쉽게 찾기 힘들 만큼 단출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작은 체구의 노인이 기자를 맞는다. 만약 주위에 나이 지긋하고 육덕좋은 이가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그를 도주로 착각할 뻔했다.

그러나 김 도주는 지금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수련을 하는 타고난 무도인이다. 오전과 오후 두차례 수련을 모두 소화해 낸다. 관원들은 직접 가르친다. 스승인 최용술 1대 도주로부터 배운 술기를 제대로 보전하기 위해서다. 용술관의 수련생 가운데 어린 학생은 한 명도 없다. 모두 성인들이다. 매주 토요일에는 서울 부산 등 전국에서 수련생들이 몰린다.

"왜 아직도 수련을 하느냐구요. 배운 게 이거뿐이잖습니까. 지금까지 스승에게서 직접 9단을 받은 사람이 세 명인데 같이 수련을 하던 동료는 3년 전에 세상을 떠났지요. 나머지 한 명은 지금 미국에 있고. 국내에는 저뿐입니다. 그래서 책임감을 느끼죠. 도복을 안 입을 수 없습니다. 게으름을 피울 수 없고요. 하는데 까지는 전수를 해야지요".

그러면서 덧붙인다. "스승님인 최용술 도주는 87세로 별세할 때까지 도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저는 아직 아기에 불과한 나이입니다."

김 도주가 합기도에 입문한 것은 40년 전인 1968년이다. 그 전에는 당수 유도 검도 공수도 등을 섭렵했다. 그러다가 1973년 열린 합기도 통합대회 참석차 서울에 갔다가 최 도주를 만난다. 그 때까지는 최 도주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김 도주는 다른 스승으로부터 "우리나라에서 합기도를 펼친 분이 최용술"이라는 말을 듣고는 겨울 무작정 대구로 향했다. 그해부터 1986년 스승이 타계할 때까지 김 도주는 금산과 대구를 오가며 최 도주를 사사한다.

도장 이름을 용술관이라 하고 덕암류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스승 때문이다. 처음에는 월계관이라 했는데 최 도주가 이름이 좋지 않다고 해서 스승의 함자를 인용해 용술관이라 명명했다. 덕암은 최 도주의 호다. 최 도주는 말년에 용술관에 머물면서 제자들을 지도했다. 용술관에는 아직도 최 도주가 쓰던 사무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출중한 실력을 가졌음에도 김 도주가 서울 등 타지로 진출하지 않고 고향인 금산을 지키는 이유이기도 하다. 스승의 혼이 담긴 곳을 떠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보면 용술관은 최 도주의 적통인 셈이다. 김 도주 스스로도 용술관이 합기유술의 원형을 그대로 보전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최 도주가 생전에 구사했던 술기의 수는 모두 3608수. 김 도주는 이 가운데 2000수가량을 전수받았다. 8단의 유단자가 알고 있는 술기가 500여 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것만 해도 엄청난 숫자다. 이 정도 수도 보통 사람들이 제대로 익히려면 50~60년이 걸려야 한다.

익히고 있는 2000여가지 술기를 모두 전수하려면 시간이 턱없이 부족할 터지만 김 도주는 느긋하다. 무술은 급하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까닭이다. 평생 수련을 해야 하고 죽을 때 비로소 끝나는 것이 무술이라는 사실, 역시 굳게 믿고 있다.

"합기유술은 참 희한한 무술입니다. 기본기만 잘 터득하면 그 주변에서 나오는 술기는 자동적으로 구사할 수 있지요.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조합이 가능합니다. 한글과 이치가 같죠. 한글은 기역 니은 등 자음 모음만 알면 어떤 글자라도 만들 수 있지 않습니까. "

스승으로부터 받은 합기유술의 원형을 지키려는 김 도주의 노력은 각별하다. 엄격한 기준 아래 아무에게나 지부를 내주지 않고 단을 수여하지 않는다. 그래서 용술관의 지부는 서울 대전 등에 몇 군데만 개관돼 있다. 자신의 말마따나 '영업'에는 신경을 쓰지않고 오로지 술기 보전에만 전념한 때문이다. 도주승계 문안에는 '이 무술을 원형 그대로 만대에 전수시켜라'라고 적혀 있다. 최 도주도 "술기는 우리나라의 보배다. 원형 그대로 전수시켜야 한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용술관은 근래들어 영국과 네덜란드 호주 등으로 저변을 확대 중이다.

김 도주는 지난 2002년 3대 도주에 임명됐다. 최용술 도주의 아들인 2대 도주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자 대구에 있는 합기유술 종가로부터 3대 도주 승계를 허락받았다.


김윤상 도주가 손목꺾기로 상대방의 공격을 무력화 시키고 있다.

사람을 살리는 합기유술

김 도주가 도복으로 갈아 입었다. 여태껏 느껴지던 사람좋은 시골 노인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먼저 몸풀기. 다리를 가로로 찢는다.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양다리가 옆으로 짝 펴진다. 가슴은 바닥에 그대로 닿는다. 일흔을 넘은 나이라는 것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놀라는 기자에게 김 도주는 "스무살이 넘으면 세포가 서서히 죽어갑니다. 매일 운동을 하지 않으면 관절도 굳어 버리지요. 그래서 관절단련은 꾸준히 해야 합니다"라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설명을 건넨다.

몸 풀기가 끝난 김 도주의 상대는 탄탄한 체구를 자랑하는 외국인. 6년간 수련해 4단을 딴 실력자다. 척 보기에도 힘 꽤나 씀직하다. 당장에라도 던져버릴듯 김 도주의 손목을 강하게 움켜잡았지만 웬걸, 한순간에 꺾이더니 한마디 비명과 함께 고꾸라진다. 어떤 공격도 마찬가지. 김 도주의 손목이나 옷깃을 잡는가 싶으면 어김없이 관절이 비틀어지면서 제풀에 쓰러지고 만다. 뒤에서의 기습도 효과가 없다. 상대가 김 도주를 막 덮치려는가 했더니 도주의 몸짓 한 번에 여지없이 앞으로 내동댕이쳐진다.

신기하다. 하지만 혹시 잘 짜여진 약속대련 같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퍼뜩 든다. 김 도주가 그런 속내를 읽었을까. 한번 잡아 보라며 손을 내민다. 무술 문외한이지만 누워서 100㎏ 바벨을 들 만큼 힘쓰는 일에는 자신있는 터. 두 손으로 김 도주의 가느다란 오른쪽 손목을 움켜쥐었다. 다른 쪽에서는 외국인 관원이 왼쪽 손목을 역시 두 손으로 잡았다. 제 아무리 날고 뛴다한들 일흔을 넘긴 나이에 장정 두 사람을 이길리는 만무. 근데 이건 또 조화일까. 김 도주가 단지 손목을 한 번 돌렸을 뿐인데 기자의 손목이 꺾이면서 무릎이 꿇리고 만다. 갑자기 생기는 오기. 한 번 더 손목을 잡았다. 하나 이번에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도주가 손목을 돌리는 대로 온 몸이 비틀어지더니 그냥 나뒹굴어진다. 손을 빼고 싶어도 도저히 뺄 수가 없다. 상대가 자신의 손을 잡을 때는 공격의사를 가지고 있어 힘이 실려 있게 마련. 그렇기 때문에 이를 역이용하면 절대 도망가지는 못한다는 것. 김 도주는 특별한 원리라고 할 것은 없고 오랜 연습을 통하면 누구나 합기(合氣)가 생기게 된다고 설명한다.

일반인들은 대개 합기도와 관련된 무술이라면 꺾기를 연상한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차기 등을 포함한 타격술기도 있다. 다만 함부로 사용을 하지 않을 따름이다. 자신이 가진 기를 총집결해 타격을 하는 까닭에 단련이 되지 않은 사람이 맞으면 내상을 입게 된다.

"합기유술의 공격은 사람 혈맥이나 급소 등을 노리기 때문에 위험이 큽니다. 그래서 대련은 잘 안하지요. 먼저 호신술을 익힌 뒤 공격술을 가르칩니다. 모든 사물은 손에 들어오면 어떤 것이든 무기화될 수 있기 때문에 무기술을 마지막에 습득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이 대목에서 김 도주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사람의 본(本)은 우주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생명인데도 일부 무술도장에서는 무조건 싸워서 이기고 강해지는 법만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이기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쓰러뜨려야 한다. 하지만 이건 무술의 본질과 어긋난다. 상대를 상하게 하지 않고도 항복을 받을 수 있는 법, 이게 합기유술의 묘미이며 비법이라는 것이 김 도주의 지론이다.

김 도주가 유럽으로 합기유술 세미나를 갔을 때의 일화. 누군가가 물었다. 평생 운동을 했다는데, 타인에게 몇번이나 술기를 썼느냐는. 김 도주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깡패가 아니어서 단 한 번도 남에게 술기를 사용한 적이 없다. 상대가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을 뻔히 알기 때문이다. 안싸우고 이기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라고.

앞으로 얼마를 살지는 모르지만 제자들에게 모든 술기를 전수시키고 싶다는 김 도주에게 틀에 박힌 질문 하나를 던졌다. "고수가 도대체 뭡니까".

담백한 답이 돌아왔다.

"이 세상에 고수는 절대로 없습니다. 단지 수련을 많이 했다는 것뿐입니다. 어떤 일이든 오래 하게 되면 장인정신이 생기고 일가견을 이루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 상대보다 눈이 빨라지는 것이고 상대 마음을 알게 될 따름입니다. 그러니 고수라는 표현은 적절하지가 않은 것이지요."

염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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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kiyusul
  200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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